| 미안해 내가 괴물이라서 | ||
| [오디션] | ||
| 내로라 | 비평 에세이 | ||
| sampl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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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은 어떤 유명한 영화 평론가가 ‘정말 무서운 영화’로 추천하여 알게 되었다. 미이케 다카시의 그 두려울 정도로 방대한 필모그래피 중에 내가 제대로 본 건 <착신아리> 정도인데, 호러의 피해자로 지목당한 외로움을 상당히 강렬하게 제시한 장면이 있어 흥미롭게 보았지만 전체적으로는 교복 입던 시절에 끝냈어야 하는 호러 교양 정도의 인상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이 대중들의 일상에 완전히 정착하고도 십수년이 흐른 후에야 이 전설적인 핸드폰 호러를 보게 되었다. 여러모로 타이밍이 안 맞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여튼 나는 <오디션>의 정체를 안 채로 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그래서 이 영화에 여성 살인마가 나와서 피의 축제를 벌이리란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미저리>처럼 여성의 광기를 악의적으로 비하하지 않는다면야 여성 살인마 슬래셔라는 것은 대개 그 자체로 즐거운 경험이다. 실제로 <오디션>도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는데, 이 영화가 제공하는 것이 거기에서 끝나지만은 않았다. 이 영화에서 여성 살인마의 광기를 묘사하는 방식에는 살육만을 기대하던 무방비한 관객의 마음을 문득 파고드는 면이 있었다. 호러의 살인마들은 대개 (의도적으로든 우연적으로든) 그 자신이 파괴하고자 하는 세계에 관해 무언가를 말하기 마련이고 [오디션]의 살인마에게도 그런 것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상하게도 거기서 말하고자 하는 무언가가 왜인지 마음에 들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아오야마의 아내는 죽는다. 그때 아오야마의 아들이 엄마의 완쾌를 빌며 만든 공작 작품을 들고 병실로 들어온다. 죽은 아내, 절망한 남편, 그리고 막 소원을 배신당한(그러나 그 사실조차 아직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아들을 카메라의 시선이 교차하여 바라본다. 그 구도와 그 캐릭터 구성과 그 상황 설정은 너무나 익숙하여 특별한 고찰이 끼어들어 갈 여지도 없다. 그리고 영화도 우리에게 그런 것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짧은 타이틀 시퀀스가 이어진 후엔 금세 시간을 내달려 7년 후에 도달한다. 중년의 아오야마 시게하루는 아들 시게히코와 즐겁게 낚시를 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만들어 먹는다. 그들의 생활은 우리가 방금 목격한 상실로 인해 조금 쓸쓸한 기색이 스며들어 있지만 굳이 과거를 상기하지 않는다면 괜히 안쓰러이 여길 필요도 없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익숙하며 막역하다. 그때 아들이 아오야마에게 제안한다. 요즘 기운이 없어 보이세요. 재혼을 하는 건 어때요? 여기까지의 흐름은 아오야마의 재혼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서사적 장치로 온전히 활용되고 있다.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내의 자리를 쉽게 대체하지 않은 채 일과 아들의 양육에만 신경써 온 아오야마는 상당히 괜찮은 남편이자 아버지로 보인다. 그도 이제는 새로운 행복을 찾으러 가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서 아오야마의 친구가 아오야마에게 신붓감을 구해주기 위해 거대한 오디션을 기획하는 장면은 조금 짖궂은 로맨틱 코미디의 도입부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제목도 이 이벤트에서 비롯되었다. 이어지는 오디션의 과정들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아오야마는 여자 주인공의 꿈을 꾸는 여자 수십 명의 이력서를 훑어 보다가 한 장에 실수로 커피를 흘리고 만다. 이 깜찍한 우연으로 아오야마의 눈에 띈 여자의 이름은 야마자키 아사미다. 그는 사진에 찍힌 얼굴이 청순하여 아름답고, 아오야마가 재혼 상대에게 바라던 것처럼 예술(발레)에 대한 전문적인 소양이 있고, 발레를 그만두는 과정에서 젊은 여자로서는 흔치 않게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와 통찰을 갖게 되었다. 아오야마도 죽음을 겪은 적이 있다. 그는 아사미에게 운명을 느낀다. 물론 이 과정을 온전한 로맨틱 코미디로 즐기기에 어딘가 꺼림칙한 것은 야마자키 아사미가 후반부에 터뜨리게 될 가학적 에너지에 대한 예감 때문만은 아니다. 아오야마가 아사미를 발견할 때까지 이 영화는 어딘지 불길한 단서들을 영화 곳곳에 뿌려 두었다. 아오야마의 친구는 오디션을 생각해 내기 전, 카페에서 시끄럽게 웃음을 터뜨리는 여자들을 보며 일본의 좋은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냐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아오야마는 특별히 동의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아오야마의 아내인 료코는 좋은 여자였지만 료코는 죽었다. 도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일본의 좋은 여자들은 다 죽은 것이다. 그럼에도 아오야마의 친구는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 모를 좋은 여자를 친구를 위해 찾아주려 한다. 수많은 여자를 불러모을 수 있다면 그중에서 한 명쯤은 좋은 여자를 발견할 수도 있을 거라고 그는 믿는다. 이 아이디어에는 남성을 선택과 평가의 주체로 두는 교만이 있고, 좋은 여자와 아닌 여자를 가르는 기준이 존재한다고 믿는 착각이 있고, 자신이 그 기준을 판가름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독선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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