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Mother’s Day!
[롱레그스]
Chell | 소설
sample

(정식 사건 보고서가 아님.)

지난 2017년 5월 11일 19시 13분 06초

시애틀 남성 연속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체포됐다. 용의자는 리 하커(52). 용의자의 검거는 시애틀시의 아웃레이크 의료센터에서 이루어졌다. SPD 소속 수사관 루비 카터는 체포 당시, 하커의 신체 건강은 그러한 흉악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다고 믿기 힘들 만큼 쇠약한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면 용의자 리 하커는 연방수사국 포틀랜드 지부 수사관 출신이라는 것이다. 범행 수위의 잔혹성과 공개된 피해자가 전원 한 가정의 아버지라는 공통점, 하커의 체포 일시-PST¹ 태평양 표준시. 워싱턴, 오리건 주 등에서 사용한다. 기준 5/11- 세 가지 조건이 맞물려 세간에서는 어머니의 날 살인마로 화제가 되었다. 이 사건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라 용의자 하커와 수사관 카터의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하커 사건의 담당 형사도 아닌 카터가 어떻게, 우연히, 이 흉악 연쇄살인범의 검거를 할 수 있었느냐 하면⋯(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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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이 뭐길래. 그놈의 사탄이 대체 뭔데. 비번인 날까지 서에 출근하게 만드는 건지. 루비 카터는 여느 미국인의 과반수 인구와 다를 바 없이 크리스천이었다. 독실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비번인 날이 주일과 맞물리면 딸을 데리고 교회에 가고는 했다. 하느님의 존재에 매달리지는 않았지만 당연하게도 저 멀리 어딘가에 계시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게 상식이라고 배우며 자랐다. 세상의 악으로 칭해지는 것들은 신의 존재보다도 훨씬 아득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솔직히 관심 없었다.

별다른 수확 없는 진술 시간이 지나가고 그녀는 딱딱한 하드커버 파일철을 덮었다. 단단한 겉과 그것에 감싸진 인쇄용지 뭉텅이가 맞물리는 텁텁한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이라도 한 건지 몽롱한 몰골로 계속해서 사탄인지 사탕인지 웅얼거리는 노숙인은 다시 유치장으로 보내질 것이다. 소액 절도 초범이었기에 보석금만 낸다면 어렵지 않게 풀려날 것이었다. 연고자가 있다는 가정하에.

‘그 전에 약물검사도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루비는 최근 자신을 둘러싼 이 모든 일들이 유년기의 그 사건을 통째로 잊어버린 자신에게 찾아온 벌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게 인과관계를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두려움에 잠식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은 공포의 대상이 된다. 없는 시간을 쪼개 딸과 고전 호러영화를 보고 나오던 날, 상상 이상의 수위의 영상물에 겁에 질려버린 아이를 달래기 위해 연출과 촬영의 원리를 설명해 준 기억이 떠올랐다. 돌아온 것은 덕분에 모든 흥이 깨져버렸다며 차갑게 식어버린 갈색 눈빛이었지만. 무슨 영화였더라. 어렸을 때 봤던 거라 반가운 마음에 냉큼 티켓을 샀던 것 같기도 하다. 루비의 기억력이 제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이제는 일상이었다. 일할 때를 제외하고.

원래 스트레스라는 것이 극에 달하면 뇌가 스스로 기억을 지운다고 하지 않는가. 어딘가의 책이었는지, 인터넷 게시글이었는지에서 읽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주제에서 멀어져갈 즈음 굵고 짧은 진동이 루비의 단단한 오른쪽 엉덩이를 때렸다. 청바지 주머니에 대충 찔러넣었던 휴대전화였다. 재빨리 꺼내서 확인한 루비는 곧바로 문자에 답장을 보내지 않고 액정을 말없이 응시했다. 메시지 수신함에 적힌 이름은 친숙하면서도 어색한 이름이었다. 리 하커. 그냥 리도 아니고 리 ‘하커’. 이름과 성이 합쳐진 스펠링으로 저장된 연락처의 주인은 근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루비 카터와 어떠한 관계인지, 세간의 호칭을 빌려 정의를 내리는 데에 애를 먹고 있는 인물이었다. 본디 하커는 음성 메시지를 남기라는 안내음이 뜨기 전까지 도통 전화를 먼저 끊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 되도록 빨리 받는 게 상책이다.

루비는 가까스로 수신음이 끊기기 직전 스마트폰 화면의 초록색 동그라미를 누를 수 있었다.



¹ 태평양 표준시. 워싱턴, 오리건 주 등에서 사용한다.